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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삶이 고달픈 이유

참 나 2005. 8. 2. 19:28
건물 2층 사무실에서, 커다란 유리창을 통하여 길거리 풍경을 내려다 봅니다.

고척1동 네거리, 2차로 도로엔 차들이 늘 오갑니다. 기다란 신호대기 행렬도 만듭니다. 인근 고층 아파트 차량들은 그 행렬 사이를 비집고 드나들면서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빵빵~' 이어서 고함소리...도 들립니다.

"저렇게들 하니 삶이 고달풀 수 밖에..."

골목에서 도로로 진입할 때 '잠시 대기' 할라치면 초조해 집니다. 뒤에 차가 한 대 더 붙으면 초조감은 두 배로 증폭됩니다. '빨리 좀 진입하라' 며 엉덩이라도 걷어 채일듯 합니다. '끼어들 틈' 이랄것도 없이 차 앞 대가리(?)를 디밀어 넣습니다.  대뜸 '빵빵~" 하면서 끼어든 차의 '죄의식' 을 자극합니다.

피차 '늘 겪고 예상하는 일' 이면서도 짐짓 눈을 부라립니다. '목구멍이 포도청' 이라며 하루에도 수 십, 수 백번씩 죄를 짓고 사는 '택시' 들이 오히려 더 유난을 떱니다.  '
좀 끼어들자' 와 '내 앞엔 절대 못 끼어든다' 는 차들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공간다툼' 을 벌입니다. 자동차가 필수품이 된 도시생활...우리들 '삶의 질' 은 바닥입니다. 비루한(ignoble) 모습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교육수준이 높다' 는 한국사람들이 이러고들 삽니다.

한 쪽은 '양보, 허락' 을 잘 안해주니 '독한 마음' 을 먹고 끼어듭니다. 다른 쪽은, 조금이라도 틈을 주면 온갖 차들이 죄다 끼어드니 더욱 바짝 붙여서 못들어오게 합니다. '창과 방패' 의 끝없는 악순환... 너, 나 없이 미욱한 짓들을 반복하며 삶을 고달프게 합니다. '자업자득'

누군가 '이젠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은 없다' 라는 글을 썼더군요.
우리 스스로 '삶의 여유' 를 찾아가야 합니다. '끼어들고자 하는 차' 가 있으면 '무조건 양보' 를 해야 합니다.  남이 이득을 보는 것이 심사가 뒤틀려도,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양보하고 허락해 줍니다. 이런 첫걸음이 중요하고,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제 '나' 또한 무조건 양보를 받아 보는 살맛나는 세상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나'를 주장하면 악순환이지만, '우리'를 주장하면 '선순환' 으로 바뀝니다. 

(아니, 끼어들기를 못하게 하면 
끼어드는 차들이 없어지기라도 한답디까? 오히려 더욱 극성스럽게 끼어드는 차들을 보게 될 뿐이겠지요)
  
 
'마음이 편해지는 글' 한토막 옮깁니다. 

"작은 길, 좁은 곳에선 한 걸음 멈추어 남 에게 먼저 지나가도록 하고,
맛 있는 음식 은 삼할만 덜어서 남에게 맛보도록 양보하라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안락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