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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세존, 예수, 노자의 경지에 이르려면,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신(神)이 되는 일이니만큼, 일반 사람들한테 이런 어려운 말을 전하고 이해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a. 매우 조심스럽고 b. 위태로우며(blasphemous, 神性 모독의) c. 소득 없는 일... 이란 것입니다. 어찌 사람이 神이 되기를 바랄 수 있으리오? 무망(無望) 한 일이다. 전체를 받아들이고 배우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실용적인 선에서 몇몇 유용한 지침을 일러주는 것에 불과하다, 그 정도만이 가능한 것이다. 아무리 지능이 비상한 사람이고 소위 서울대를 나왔더라도, 이 깨달음을 전해주려고 대화를 시도해 보면 초보자나 마찬가지란 것을 알게 됩니다.
'큰 것'이 좋다고 하나, 이는 '작은 것'이 그 바탕에 있기에 그리 여기게 되는 것이니, (마땅히) 작은 것에 대해서는 '존재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로다. 먼저, 그 '작은 것'이 존재함에 대해 감사히 생각하고, 그다음에는 같이 떠받들어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사랑과 자비, 연민과 긍휼의 감정을 가질 줄 알아야 하느니라...이번 추석 때, 사람 앞에서(이런 일은 드물지요) 해 본 말인데, 평문이고 쉬운 말임에도 불구하고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말이 어려워서가 아니요, 지금까지 견지해온 삶의 방식과는 어긋나는 것이었기에 그 인식 전환이 저항하는 까닭이로다 (삶의 방식을 새로 바꾸면 나는 죽는다... 하니)
사실이라 해도 모르고, 거짓이라 해도 모르고 어차피 사람들이 모르기는 마찬가지로다; 누천년 지난 지금까지 반야심경(=연기법) 경전의 해석 하나를 못한 채, 남의 다리 긁는 것 같은 말씀이 전해져도, 이것이 제대로 된 것인지 아니면 잘못된 것인지를 전혀 모른다, 어떻게 잘못되었다고 밝혀내는 사람이 없었다
※ 종단, 어느 누구의 눈치를 볼 일도 없는 입장에서 正覺을 해 낸 제가 드디어 반야심경의 비의(秘意)를 얻어냈고, 이 블로그에 자세히 적어 놓았습니다.
석가세존, 예수님은 이 절벽 같은, 사람들의 인식장애(=이치 장애)를 모른채 대중을 상대로 설법(說法)을 했을까? 아니, 알았습니다. 성경 말씀의 예수님은 "미련한 자는 절구통에 넣고 찧어도 그 미련함을 벗겨내지 못한다"라면서, 인식을 전환하는 일의 한계를 말씀하셨습니다. 이른바, 바위에 물 주기, 소 귀에 경 읽기 란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아예 말을 안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너희가 내 앞에서 (바로 즉시) 따르지는 못할지언정,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만큼 이렇게 달리 생각할 수만 있다면, 일정 부분이나마 '삶의 고통'을 덜 수는 있으리라... 하여 진리의 말씀을 전하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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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본문의 빨간색 글이 진리(眞理)이며 이는 석가세존(자비), 예수(사랑), 노자(도덕경), 증산(해원상생) 말씀의 공통분모입니다. 일상용어로는 상보성(相補性; 이제부터 양극단은 서로 배척하지 말고 같이 살아야 한다, complement, 상반된 것은 서로를 보충해 줌) 입니다. 물론, 반야심경도 같은 말씀(=연기법)입니다. 이 세상의 '진리'는 오직 이것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