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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의 '해원상생'은 이런 것

참 나 2024. 3. 17.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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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불수편애편오왈인 (不受偏愛偏惡曰) b.불수전시전비왈의 (不受全是全非曰) c.불수전강전편왈예 (不受專强專便曰) d.불수자총자명왈지 (不受恣聰恣明曰) e.불수남물남욕왈신 (不受濫物濫欲曰) <典經 p.259~260 ,敎法 제3장>

증산( 甑山, 1871.11.1~1909.8.9, 세수 39세)은 후천(後天; 지금부터 세상살이)의 덕목으로서, 유교의 <인,의,예,지,신>을 해원상생에 입각하여 위에서 처럼 새롭게 정의하였다. '대순전경'의 한자 말씀은 번역이 없습니다. 따라서, 일반인은 물론, 증산계열의 도인들도 이 문구의 깊은 뜻을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없을겁니다. 만약, 나는 그것을 잘 설명할 수 있다 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깨달은 사람(先覺者, 지도자)인 것입니다.

​위 '인 의 예 지 신'을 각각 아래와 같이 설명하겠습니다.

a. 어질다(仁, '남의 입장'을 헤아림): 좋은 사람/대상을 편향적으로 좋아라 하지 않으며, 싫은 사람을 편향적으로 싫거나 미워하지도 아니한다. 이게 뭔 소리냐? 다름아닌 상보성(연기법, 해원상생) 얘기로다; 싫거나 좋은 대상이 (나에게) 존재한다는 것은 그 반대편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게 해 주는 것이니; 즉, 싫은 사람이 (나에게) 존재한다 라는 것은 내가 좋은 사람을 옳게 대접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로다! 따라서, 나에게 싫은 사람이 없다면 나에게 좋은 사람도 없는 것이로다, 싫은 사람이란 것은 (나에게) 좋은 사람의 가치를 확실하게 하는 도다, 싫은 사람을 (털거나 없애버리려 하지 말고) 기꺼이 수용하라, 이로써 좋은 사람을 옳게 인식할 수 있으리니.

​보시라! 싫은 사람이나 대상을 대하는 바른 태도를 이렇게 해석해 낸 사람이 또 있으랴? 증산의 인(仁)에 대한 말씀은 바로 '해원상생(미워도 같이 살아가는 방도)'를 말한 것입니다. '도대체 저 나쁜 놈을 내가 왜 받아줘야 하는데...?' 라는 속된 생각에 답을 준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어질다 라는 말이, 좋거나 싫은 사람과 대상을 대할 때, 한 켠으로만 치우쳐 받아들이지 아니한다란 말씀이니, 싫은 대상도 이처럼 그 쓰임이 있음을 깨닫고 내 삶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합시다.

b.의롭다(義, 세상의 '옳은 일'을 주장함): 절대적으로 옳다 라 하거나 그르다 라고 하지 아니한다. 설명에 앞서, '인(仁)은 나머지 넷 (의,예,지,신)을 다 포함한다(程顥 정호)'라는 해설도 참고바랍니다.

​전시(全是, 절대적으로 옳은 것)와 전비(全非, 절대적으로 그릇된 것)가 있다 라는 생각은 모자란 것이니 물리쳐야 한다, '해원상생(=연기법)'에 부합하는 증산의 의(義)는 다음과 같이 설명해야만 합니다. 즉, 옳은 것이 있으려면 반드시 그른 것이 있어야 한다, 그런즉, (무엇을) 절대적으로 옳다, 또는 절대적으로 그르다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아니한다,

​세상의 '그른 것'이란게 무슨 말이뇨? [대답] 옳은 것이 그 옳음(바름)의 가치를 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른 것'이란 바탕이 있어야 한다, 부연하면, 그른 것이란, 옳은 것이 존재하기 위해서 (반드시)필요한 것이다, 옳은 것은 그른 것한테 존재의 빚을 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른 것을 대할 때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란 생각은 잘못이로다, 

다음 차례인 예(禮)는 자신을 낮추는 것이 핵심입니다. 잘난척하고 대접을 받겠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로다. 이제, 억지로 예의를 강요함은 강(强 강함)이요, 그와 반대로 제 편한대로 하는 것을 편(便)이라 할 때, 이 양자의 (상보적)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이 편하려고 흐트러진 모습은, 예(禮)를 강조하는 입장에서 볼 때, 쓸데없는 일이 아니니, 상보적인 모습이로다.

지(智)의 덕목은 '자총자명'이다; 총명함을 지나치게 드러냄(=恣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였으니 이는 아는 것을 안다라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 라고 함으로서 지혜는 온전한 것이 되는도다,

신(信)의 덕목은 남물남욕이니, 이는 물욕(욕심)이 넘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음이다. 역으로, 불신(不信)이 왜 생기는가? 자기 이득을 취하려는 욕심(물욕)이 큰 탓에 서로간의 믿음(信賴신뢰)이 깨지는 것이로다.

이 말씀들이 다 무엇이냐? 반야심경에 나와있듯이, 깨끗함(=淨정)이 그 깨끗함의 가치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더러움(-=垢구)이라는 배경(=반대가치, 바탕)이 반드시 필요하다, 불가에서는 연꽃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데, 이는 흙탕물 속에서도 화려한 꽃을 피어내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이로다. 이는 단지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니 고결하다, 그런 뜻 보다도, 더럽고 깨끗함은 각각 자기 반대짝의 존재가치를 드러나게 해 주는 존재로다, 거기 방점(=낙처)이 찍혀 있는 것입니다. 즉, '부정적인 것'은 그 반대켠의 긍정적인 가치를 더욱 생생하게 드러내 주는 것이니, 내 존재란 것은 오로지 네 덕분이요, 그것이 고마운 것이로다; 이것이 상보성(complementary, 相生) 이며, 이 세상 진리는 오직 이것 하나 뿐이고, 이는 부처님의 연기법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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