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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유튜브 댓글

참 나 2023. 12. 31. 11:41

깨달음...은 물질(대상)로 부터 거기에 따라붙어있는 '가치부분'을 분리해 내는 일입니다.

a. 물질(대상) 그 자체가 먼저 존재합니다

b. 물질(대상)에 부여한 가치(=붙여진 이름, 고정관념과 선입견)는 연후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물질(대상)과 거기에 부여한 가치는 다른 것(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을 깨달음이라 합니다.

​'있는 그대로'...로서의 물질(대상)은 가치중립적 이로다. 태어나서부터 체득한 물질(대상, 사물의 명칭)에 붙여진 온갖 가치들, 그것은 선입견, 고정관념, 편견입니다. 이런 개념들은 자연스러운, 자동학습이지요. 하여, 세상만물에 대한 아무런 관념이 없는 상태, 즉 세 살배기 어린아이로 돌아가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 것입니다. 연이나, 사물(대상)에 대한 고정관념/편견/선입견은 변하게 만들 수가 있으므로, 그 가능성을 갖고 온갖 종교(으뜸 가르침, 진리)가 성립하였던 것입니다.

​물질의 기원...? 그 질문은 '연기법'을 잘못 해석한 탓입니다. 연기법은 성철스님이 실수했던 것처럼 E=MC2 얘기가 전혀 아니다, 깨달음...의 판정은 '연기법'을 아느냐 모르느냐의 대답으로서 종결됩니다.

또한, '연기법'으로 부터 사랑, 자비, 상생의 일관된 진리를 깔끔하니 추론해 낸다면, 그는 (초보)깨달음을 얻은 것이 됩니다. 만물(물질)의 기원을 설령 알았다 한들 일상 삶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어림도 없는 애기지요. 연기법은 흔히 잘못 알듯이 '앞의 원인이 있어서 뒤의 결과가 있다' 라는 그런 얘기가 아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그런 상식적, 허접한 얘기를 몰라서 그걸 깨우치려고 고행을 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크게 잘못 짚은 것입니다. 연기법은, 한 가치(=소위 이것) vs. 반대 가치(=소위 저것)의 상보성(complementary) 얘기인 것입니다.

[연기법 緣起法] 큰 것이 좋다고 자랑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작은 것(의 초라함)이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에 그 좋은 가치(!)가 성립하는 것입니다. 역도 진이니, 작은 것은, 큰 것이라고 하는 대단한 존재감 탓에 상대적으로 더욱 작게(초라함!)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확한 연기법의 설명입니다. ​'있다(有)' 라고 하는 관념은 '없다(無)'란 관념이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에  비로소 성립하는 말입니다. 이것이 '유무상생'이라고 한 노자 도덕경의 구절입니다. 반야심경에서 예를 든 것처럼 '깨끗하다'란 말은 더럽다 라는 반대개념을 의식했을 때 비로소 성립하는 말이다. 하여, 불구부정이 그것입니다. 부증불감, 불생불멸도 같다. 해골바가지 속의 물이라도 '모르고' 마셨다면 그 또한 그냥 물일 뿐이다. '모르고' 란 말은 가치판단(=色)이 없다는 뜻입니다. 연기법은 물질 그 자체가 있다 vs 없다란 것이 아니요, 물질 등에 붙어있는 가치관념(=고정관념,선입견,편견)을 놓고 말한 것이란 점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산은 산, 물은 물...' 이 유명한 말씀 또한 산/물은 그냥 산/물일 뿐이요, 거기에 어떤 다른 수식어(=가치평가)도 당치않다; 그런 수식어는 산/물 그 자체와는 별개인 것이다!, 석가세존,노자,예수,증산 성현들이 하신 말씀은 다 같은 진리의 말씀(=연기법)이었으되, 이를 옳게 전달함이 없이 오늘날에 이르렀고, 제가 3년 전 정각(正覺)을 하여 활연관통하고 세상에 처음으로 이렇게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p.s

이 글을 읽고 문득 깨달았다 라는 사람이라면 그는 '초보 깨달음'을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조차도 있기가 어렵다, 그 어떤 '선지식'조차도 깨달음(정각)을 얻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머잖아 곧 쏟아져 나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