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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행무상' 역시 연기법으로 해석한다

참 나 2023. 10. 9. 20:20

제행무상(諸行無常)을 다시 해석합니다.

제행(諸行)은 희로애락애오욕(喜怒愛樂哀惡慾)등의 인간감정을 말하는 것이요, 무상(無常)이란 말 뜻은 절대법칙(절대성)이 아니다 의 뜻입니다. 사람의 온갖 감정은 '상대적인 것이니 그것을 깨달아라' 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온갖 감정은 그럴 수도 있으되(=공감차원), 그것이 절대법칙(절대성)인 것은 아니다(=無常). 한자사전에는 상(常)이란 단어는 법(法)이란 뜻이다, 즉 정해진 것, 절대성을 말할 때 쓴다, 따라서, 무상(無常)은 '감정은 절대법칙이 아니다' 또는 '상대적인 것이다' ​불가의 삼법인으로서 제행무상은 역시 '연기법'으로 푸는 것이 올바른 이해이리라. 기존의 해석처럼, 세상은 돌고돈다, 한 달이 크면 한 달은 작다, 화무십일홍(열흘동안 피어있는 꽃은 없다)등의 통상적인 해석은 '제행무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런 얘기는 굳이 부처님이 죽음의 고행으로 깨달음을 얻어서 말하지 않아도 이미 사람들이 다 알고있는 생활 속의 지혜일 뿐이다, 따라서, 제행무상은 제법무아가 그렇듯이 '연기법'에 입각해서 해석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기쁨은 슬픔을 바탕에 깔고 드러나는 정서가 아닌가? 화를 냈다가 이내 깔깔대고 웃기도 한다,화가 나는 것은 일상의 평온함이 깨진 탓이로다,

사랑의 감정은 무관심 내지는 미움의 감정을 깔고 드러나는 감정이다,

즐거움은 지루함, 답답함을 바탕에 깔고 드러나는 감정이다,

슬픔이란 기쁨을 잃은 감정표현이다,

미워함이란 것은 사랑의 상실이다...

​반야심경등 부처님의 핵심적인 말씀은 모두 다 연기법으로 풀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진리는 오로지 연기법, 그 한 가지 뿐이기 때문입니다. (緣起法; Contradictory is complementary 상반된 것은 상보적인 것이다)  연기법에서 벗어나는 해석은 부처님 말씀이 아닌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님 말씀(신약성경)과 노자의 도덕경 또한 연기법을 얘기한 것입니다. 연기법으로 풀어야만 문장들의 깊은 뜻(의미)이 드러납니다. 노자 도덕경은, 태초의 우주에 무(無)가 있었는데 그로부터 유(有)가 생기고...하는 식의 그런 물리법칙 얘기가 아니로다,

​'연기법'이 아닌 풀이나 해석등은 모두 다 삼천포로 빠져 버린 것입니다. 대한불교조계종의 홈페이지에서도 '제행무상'을 해석해 놓았는데 그것은 그냥 평범하고 상식적인 얘기일 뿐 깨달음의 말씀이 (전혀)아니었다, 오늘날 불가에서는 '연기법'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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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단정적인 말버릇과 경직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일상의 대화에서 벌컥 화를 내기 쉽다, 
그 반면,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주변과의 원만하고 원활한 조화를 이루며 살기가 쉽다.
진짜 문제란 무엇일까?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있는 버릇들을 알아채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설사, 옆에서 누가 지적을 해 주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심지어, 당신이 나를 잘못 본 것 이라고
말을 한다는 점이다. 남의 조언을 듣고서 자신의 태도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깨달음을 얻은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