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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의 '죽음을 맛본다...' 란 어떤 의미인가?

참 나 2023. 10. 7. 17:41

《마가복음, MARK 8:34~9:1》

(9:1) "내가 진실을 말하노니 여기 있는 몇 사람은 하나님 왕국이 권능으로 오기 전에 죽음을 맛보지 않으리라" 당시 사도(使徒)들한테 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란 말은 (과연) 좋은 뜻 이었을까요? 아니,그 반대였다. 앞의 글(8:34)로 부연 설명하겠습니다.

예수 가라사대 "나를 따르려면 a.자기자신을 부정하고(deny himself) b.자신의 십자가(cross)를 짊어져야 한다" 여기서, '자기자신을 부정'하라는 말씀은 너를 버려라, 너가 죽어야 한다 라는 뜻입니다. 그것도 반드시(must)다! 이처럼 험악하고 난해한 예수님의 말씀은 이어지는 다음 구절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속세의 삶을 원하는 자는 그것을 잃을 것이요, 그 삶을 버리는 자는 구원을 받는 까닭이로다".

메시지는 명료합니다. 예수를 따르려면 자아(自我)를 던져버려라, 자아를 그대로 갖고서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 진리는 속세 삶의 방식이 아니로다; 욕망과 환상으로 사는 이 삶은 영혼을 빼앗긴 삶이로다...(그래서 죽어야 한다고라?) 오늘날 교회에서 목사가 신도한테 이런 식의 말을 했다가는 교인들이 다 도망가버리겠지요? 그것은 분명합니다. 이미 세속화된 오늘날 교회는 더이상 진리(=예수님 말씀)를 전달해 주지 못하고 있다, 

예수님은 '나를 따르려면 너희 삶을 버려야만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속세의 삶을 버린다...그것은 곧 '죽음을 맛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죽는 것과 맛을 보는 것은 다르다, 맛만 보는 것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집안의 가장이자 아버지/남편이고 또는 어머니/부인인 사람이 '삶을 버린다'라는 가정(假定)또는 그런 결심이란게 얼마나 끔찍한 얘기인가요. 거의 대부분은 불가능한 일이지요.

세 살 이후 ​지금까지 살아온 고정관념, 선입견, 편견을 다 바꿔라, 뒤집어 생각하라; 이런 주문이 내 현실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차라리 나보고 죽으라는 얘기아니냐? 라는 생각이 들면서 다 들 도망가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이걸 겪어내야만 비로소 진리를 알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필요조건(첫걸음)이 되는 것입니다. 무서운 얘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1993년도에 이런 일을 겪어냈습니다. 그 당시 힘든 상황을 용케 견뎌내고 지금껏 같이 살고있는 저희 집사람도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나 종단의 인도자가 신도들에게 이런 식의 접근(=삶; 재물/돈을 버려야 한다)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어느 집을 막론하고 가정은 풍비박산, 난리가 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얘기입니다. 정리합니다. 마가복음 9:1의, 예수님 가라사대 '여기 서있는 너희들 중 몇 명은 죽음을 맛보지 않으리라'(some who are standing here will not taste death...)이 말씀은, 예수를 따르겠다고 한 사도들 중에서 진정으로 따르지 않을 몇 명을 지목하여 하신 말씀의 뜻이 읽혀집니다. 부연하면, 어느누구든 진리에 입각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그리고 깨달음을 얻으려면 반드시 죽음을 맛봐야만 한다는 메시지가 드러납니다.

이러하니 진리의 삶,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이 맨정신으로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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