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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다 파동(波動)이다

참 나 2020. 10. 21.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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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다 파동(波動)이다! 

인간 생명체를 포함하여, 모든 물질의 기본이 되는, 원자(원자핵의 양성자와 중성자, 핵 주위의 전자)는 상상할 수

없는 빠르기로 회전하는 파동체이며, 빛(광자) 또한 '전자기파' 이다. 파동은, 같은 파동끼리는 강해지고

(=보강간섭), 반대파동엔 소멸해 없어진다(=상쇄간섭). 

 

※ 이러한 粒子(性)는 기독교 소설에서 처럼 '하나님'이 만든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냥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알 수도 없다!  그게 아니라면, 광막한 이 우주는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으리. 

또, 우주는 종말도 없다 (天符經: 一始無始一 一終無終一 )  오늘날의 '입자물리학'은 '쿼크' 그 이하를 모르며,

입자(有)와 파동(無)의 병존성 문제 (=있음과 없음은 상호 내포)도 설명하지 못한다.

 

내가 '깨달음'을 확고히 얻었다면, 나의 그 깨달음은 (의식)파동이 되어 내 주변에, 또는 그 보다 더 멀리 퍼져나갈

것이다. 깨달음이 아닌, 내가 품은 어둡고 나쁜 생각도 마찬가지의 이치로서, 파동이 되어 내 주변에 퍼져 나갈 것

이다. 그것은 누가 굳이 말(의식)을 옮기고 다니지 않더라도, 파동의 형태로서 저절로, 순식간에 그리될 터이다. 

※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일상에서 이런 지식을 응용해 볼 생각을 (문득)했다면 깨달음에 성큼 다가 선 것입니다.

 

친구들 모임의 자리에서, 누군가의 말을 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양반되긴 틀렸네"라며 웃곤

하는 것은 흔한 예이다.  ( 양반되긴 틀렸다...란 말은, 속담에 '호랑이도 제 말하면 나타난다' 하였으니, 그 호랑이

에 빗대었기 때문)  그 이유를 생각해 봅시다.  친구(또는 호랑이)가 모임장소에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으면,

그 물질파(또는 뇌파)는 점점 강해질 것이고, 그것이 (기다리던) 누군가의 파장과 동조를 일으켜서

본인도 모르게 (!) 그 사람(또는 호랑이) 얘기를 꺼내게 된다, 이는 일상에서 흔히 보는 흥미로운 현상으로서, 

결코 '우연의 일치' 따위로 치부해 버릴 일이 아닌 것이다,      

 

불가 '법구경'의 말씀입니다:  "꽃은 바람을 거역해서 향기를 낼 수 없지만,

선하고 어진 사람이 풍기는 향기는 바람을 거역하여 사방으로 번진다".

'도마복음서'에는 "네가 깨달음을 얻으면 너는 알려질 것이다"란 말씀이 나옵니다.  이는, 나의 깨달음은

파동이 되어, 주변 또는 먼곳에 까지 전해질 것이란 말씀이다,  그게 아니고서는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다, 

그것이 참으로 그럴 듯한 말씀이라는 것을 다음의 사례로 설명합니다.  

 

예 1:

철장(우리) 안에는 6~7 마리의 개들이 있는 데, 그 중 한 마리가 용감하게 철장(약 2.5m)을 기어오르다가

기어코 훌쩍 넘어갑니다. 이 때, 그걸 지켜보던 옆의 개가 쏜살같이 철장을 넘어가고, 다른 개들도 철장을

넘어가려고 버둥댑니다.  개들은 그럴 능력을 갖고 있었는 데, 다 들 까맣게 잊고 있다가,

'선각'(先覺)을 한 개(犬) 덕분에 숨어있던 능력이 발현되면서 철장을 탈출(救援 )할 수 있었다,

 

  과연 구원(救援, redemption)이란 것은 이처럼 내 수족을 허우적 거리며, 내가 나를 구(救)하는 것이로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나 우주모선(UFO)이 나를 구원해 주는 것이 아니다, 그런 구원 따위는 설령 있다고 한 들 아무런

가치도 없다,  즉, 내 노력, 나의 변화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란 얘기다,  하나님/UFO는 허황된 믿음이다,

'개벽'이란, 내 의식의 그러한 변화(=利在田田, 이로움이 '마음 밭을 가는 데' 있다 란 뜻), 즉 정신개벽인 것입니다.      

 

예 2:

'백 번 째 원숭이 신드롬' 얘기도 마찬가지다,  바닷가에 한 무리의 원숭이들한테 고구마를 먹으라고 던져

주었는 데, 그 중 한 마리가 고구마에 묻은 흙을 바닷물에 씻어 먹더라! 그랬더니, 주변에 있던 다른 원숭이들도

똑같이 고구마를 물에 씻어서 먹더라는 얘기이며; 더욱 놀라운 현상은, 같은 시기에 '다른 지역'의 원숭이들

한테서도 똑같이 그런 일이 벌어졌는데, 다 들 먹이에 묻은 흙을 물에 씻어서 먹더라는 것입니다.

 

예 3:

이런 일은 물론, 인간들 에게도 적용된다, 즉, 피자 쪼각을 보지 못한 아이들은 '둥그런 피자 한 판'을

세 조각으로 나눌 줄 모른다,  가로, 세로로 자르는 것만 알지, 가운데를 중심으로 삼등분 해 내는 것을 모른다,

그런 걸 한 번 만이라도 보았다면  써 먹을 수 있을 터... 이게 어찌 피자 조각 나누기에 국한된 얘기이겠는가?    

 

이로써 알 수 있듯이, 우리는 기본바탕이 '무한 능력자(순수의식을 말함)'이며, 신의 아들이자 신(神)이다!

그런데 우리는 '갖고 있는 잠재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  잠재력은, 우리가 의식체(생명체 공통=神, 고정관념이나 선입견, 과거습관 등에 얽메이지 않음)란 것을

깨달을 때 발휘될 수 있습니다.  즉, 내 의식상태, 내 감정은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됩니다; 

자기고집, 선입견, 고정관념, 육체적 제약과 과거습관 등에서 벗어나면, 사주팔자로 부터도 벗어나며(心象),

신(神)이 되는 것이다, 그처럼 간단한 일이건만 우리는 변화를 거부한다, 따라서, 

내 의식과 감정은 '조절 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신(神)이 되어 얼마든지

같은 세상을 다르게 살아 갈 수 있다, 천국(天國)은 내 머릿 속에 있는 것이고, 밖에는 따로 없다!

 

※  천지개벽 :  개벽은 어느날 갑자기 세상이 뒤집힌다거나, 초능력자가 이적(異蹟) 기적(奇蹟)을 일으키거나,

니비루 혜성이 나타난다거나, 지구의 지축이 바뀌는 그런 얘기가 아니다,  그런 일은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 여기서 핵심은 '내 의식의 변화' 를 말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내 의식이 그대로인 채, 세상이 아무리 바뀐다 한 들 그런 변화에는 금새 적응이 되어버리니, 며칠 후엔 도루묵이

되어 버리고 만다, 대저, 물질(세계)이란 것은 이런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육체부활이나, 다비식 후의 사리수습과

같은 '우상숭배'를 포함하여, 모든 물질(육체포함)은 한낱 '물체'다.  그 반대로, 내 의식이 바뀐다면, 세상은 그대로

일지언정 그런 변화는 본질적인 것이며 나와 더불어 영원하다, 그러므로, 천지개벽은 '정신개벽'외에는 하등의

의미가 없는 것이다.

 

저의 깨달음과 이런 글 또한, 누군가의 깨달음으로 연결되는 파동(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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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사람들은 '변화하기를 거부한다' 라는 현상을 설명하겠습니다.

'변화'를 한다는 것은, 이제까지의 나(자아)를 비판하고 부정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어렵다,

 

a. 자기자신을 돌이켜 볼 때, 그동안 '잘했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라면, 내가 변화를 일으킬 이유가 없겠지요.    

b. 행복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변화란 것은 지금까지의 '내 자아'가 작살이 나야 합니다(=자기부정), 

c. 이는 마치 '죽음을 맛보는 일'과도 같으리다, 이것을 해 낼 수 있는 밑천은 '수도'(修道)밖에 없습니다.  

 

그 수도를 통해서 내가 변화하겠다는 생각, 마치 옷을 바꿔 입듯이, 내 자아가 이제부터 바뀌어야 한다 라는 

'초발심'(初發心)이 들어와야 합니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남들로 부터 '사람이 변했다'라는 말을 듣는 것입니다.

내가 나날이 새로워지는 것(又日新, 우일신), 그게 바로 도 닦는 삶 인 것입니다.  끝. 

 

* 이 글은 처음 올린 이후로 대략 50회 정도 가필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