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신문 칼럼이었는데, 오늘 문득 그것이 깨달음을 설명하는 데 적합하다 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김정운(문화심리학자) 교수는 자주 다니는 목욕탕에서 어느 날 조폭처럼 온 몸에 문신을 한 사람이
드라이어로 사타구니를 말리고 있는 것을 보고서는, 자기는 앞으로 그 드라이어(dryer)는 절대로
쓰지 않을 것이다, 다음에 그 사나이를 만나면. 얘기를 꼭 하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내비치면서...
("아이구 선생님, 그걸로 거기를 말리시면 어떡합니까? 다른 사람들도 같이 쓰는 건데") 그런 얘기였겠지요.
사타구니를 말리건, 머리를 말리건 무슨 상관이랴? 안 쓰긴 왜 안 쓰냐? 드라이어에 오물이라도 묻었다더냐?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겠지. 무언가 어긋난 일을 보면 기분이 나빠지는 것, 그 나빠진 감정으로 상대방과 시비를
가릴 때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상대가 좀 쎄게 보이던가 저항하면 그럴수록 더 들이댄다.
그런 심리상태는 늘 조마조마 하다, 기분 나쁜 일을 겪게되면 그날 하루 기분을 잡쳐 버릴테니까,
그런 상황은 자기가 통제할 수 없으니 늘 피해자 (당하는) 입장이다, 그게 또 기분을 우울하게 한다,
드라이어(dryer)는 머리를 말리는 기계다...? 그것은 이른바 '고정관념'이란 것입니다,
남들이 보는데서 사타구니를 말린다 라는 것은 물론 점잖지 못한 행동이다, 그러나, 이야기의 포인트는
부적절한 행동이 아니라, 엉뚱하니 드라이어를 못쓰게 되었다 라고 생각하는데 있다,
드라이어는 잘못이 없고, 더럽혀 진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쓴다 라면 이게 뭔 말인가?
유명한 원효대사의 '해골바가지 물' 일화도 똑같은 얘기입니다.
중국으로 도를 닦으러 가던 길, 어느 날 캄캄한 동굴 속에서 한 밤 중 잠결에 목이 말라서
시원하게 들이켰던 물이 다음 날 아침에 보니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이었다는 것을 알고서
구토를 일으켰다, 거기서 깨달음 (모든 게 내 마음/해석의 문제임)을 얻고는 발길을 돌려 버렸다는...
드라이어는 그대로 이다, 如如하다, 예나 지금이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 것이다'
그 경지를 일컬어 '있는 그대로를 대한다' 라는 것입니다. 잘 모르면서도 많이 쓰이는 말이지요.
내가 보고, 듣고, 겪으며, 생각하는 모든 일은 오로지 내 두뇌에서의 그러한 해석일 따름이다,
'객관적 실체(또는 상대방)'는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뭐라 부르던지,
어떤 가치를 매기던지, 그런 것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냥 존재하고 있을 뿐이로다,
삶이란, 대상과 실체에 붙여놓은 '가치(色)'를 가지고 찧고 까부르고 하는 것이니,
마음만 돌려먹으면 탐,진,치(三毒)를 면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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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당신의 생각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대상은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라는 대목이 중요하다,
내가 대상을 보는 관점(고정관념과 선입견)을 달리하면 새로운 면 (그것이 물건이라면 새로운 용도:
창의성)을 볼 수 있다, 바로 '우일신'이란 것입니다 (= '대학'에 나오는 '在新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