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곁으로 다가 온 '사회양극화- 國難'

참 나 2007. 2. 13. 12:09

'그대 주변을 돌보지 않는 채, 어찌 그대의 삶에 대하여 말할 수 있으랴?  

그리 혼자서 얼마나 재미있게 살 수 있으랴...?" 

 

요즘 '...동기모임' 에선 본의아니게 생활이 어려워진 '家長 동기' 들을 돕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굳게 닫혀진 마음 한 귀퉁이를 허물어뜨리게 된 겝니다.  '모임' 이 뭔가 '어른스런 행동' 을 합니다.  어울려 사는 삶이지요. 

 

만나서 맨 날 공허한 애기만 떠들더니 이제 뭔가 좀... ('가난구제' 라기 보다, 졸지에 힘들어진 지인들, 적으나마 위로코자 함이지요).

그나저나 지금이 '國難' 일까요?  아마 그럴겝니다.  정치인들이 저렇게 '민생문제' 가 어떻고 떠드는 것을 보더라도.  국가/사회가 '난국' 이라면 서로 도와야 한다는 분위기가 자연히 생기겠지요.


'곁으로 다가 온 빈부격차 -사회 양극화'


'동기모임' 에서도... 파탄지경의 삶으로 하루하루를 신음하는 사람부터 기업체 CEO, 수 십억원의 재산가 까지 다양합니다.  똑같이 출발한 수 십명의 고급인력들이 30년, 한 세대쯤 지내고 보니 그야말로 하늘과 땅의 빈부격차를 보입니다.  게다가 자식들은 올바른 취직자리 조차 못 얻고 있나 봅니다. 


이웃이 밉거나 곱거나, 나이들어 '말 벗'이라도 있으려면,

 

1. 배우자 에게... 내 생명의 끈을 붙들고 함께 가 줄 것을 생각한다면,
2. 자식 에게... 최소한도의 '육친의 정' 이나마 유지되길 바란다면,
3. 친척 에게... 기쁨/슬픔에서 최소한의 정서적 유대라도 함께 하겠다면,
4. 동기모임에서... 이들과 더불어 '나의 삶' 을 얘기코자 한다면...  
5. 동호인들 ...아울러 나와 함께 하늘로 머리를 두고 사는 온 세상 사람들... 


이러한 모든 이들 중에서, 어려워진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내 재산의 일부라도 덜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때, 전 재산을 털어낼 과격한 제안을 했던 前過(?)도 있으니...)  그러나 지금은 '투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최소한의 투자' 조차도 없이, 내가 항차 어찌 그들과 더불어 내 삶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어찌 그들에게, 나의 일에 대하여 입을 벌려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투자하고 나눈 딱 그만큼(!), '존재감' 을 공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살면서 그것만큼 충분한 일, 투자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들이 있어서 나는 고마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