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자, 가진 자의 불행
가진 자, 있는 자의 불행이라면... 연이나, 우리는 부닥친 현실을 극복해 냄으로써만 삶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밖의 책이나 남의 얘기 따위...그러한 지식과 이론은 한낱 이론일 뿐... 이것을 겪어내지 못한 사람은 부실한 것입니다. 때문에 굳이 재정파탄이 아니더라도 그는 ‘함량미달’ 이란 이유로 이미 '망한 것' 입니다. 즉, 야생적응에 실패하여 다시 우리 속에 갇혀버린 짐승의 형국이니, 없는 자는 그러한 ‘있는자’ 를 측은하게 보아야 합니다.
바로 그 가진 것, 있는 것 때문에 야생성, 즉 삶의 현장에서 맞부닥 치고자 하는 용기와 지혜를 잃는다는 것입니다. 생존의 지혜란... ‘닥치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 는 것... 뭐는 할 수 있고, 뭐는 죽어도 못하고 그런 일이 어디 있으랴? 이것이 질박하고 솔직하게 삶을 대하는... 바른자세라고 봅니다.
더 이상 먹이를 위해 투쟁할 필요가 없게 되고, 마침내 야생성을 잃어버린, 있는 자 가진자, 기득권자는 그 있는 것, 가진 것을 위협 받기라도 하면... ‘생존의 위기’ 가 닥치는 것으로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내 것을 지켜야 한다...나는 안쓰는 것이 버는 것이다...’ 하여, 부자가 더 인색하다는 말을 듣습니다. 일신의 편안함과 안일함을 보장하기 위해서 남들과,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겠다...이는 안될 말이지요. 한 개체의 편협하고 폐쇄적인 삶의 모습... 누구와도 마음을 통할 수 없는 고립된 삶입니다.
‘먹이’ 가 늘 주어지는 상황에서는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일응 자연스런 모습이겠지요.
생존을 위협받는 현장에서 직접 겪어내는, 삶의 지혜와 투지, 그것이 진짜로 ‘영양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담, 없는 자의 행복이라 함은 바로 그 반대입장이 아니겠습니까.
‘없이’ 살아왔고, 없이도 살 수 있음을 잘 알기에, 있는 자, 가진 자가 갖고 있는 만큼의 ‘빼앗김의 염려와 상실의 공포’ 는 없겠지요. 이는 함량충족이요, 삶의 자세가 온전한즉, 벌면 된다, 또 벌 수 있다(!) 는 믿음이 바로 '삶의 밑천' 이 되는 것입니다. 그 생각 하나가 바로... 없지만 이웃과 나누는 삶, 없지만 건강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으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없는 자의 행복’ 은 바로 그 없는 것 속에 있습니다.
연이나, 나중에 좀 있게 되더라도, 없게 될 가능성은 늘 염두에 두며 살아야 합니다. 일상적 삶의 투지를 자칫 느슨히 함은 곧 ‘모든 것을 잃는 것- 함량미달로 떨어지는 일’ 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진짜 가난은 돈이 없음이 아니요, 마음이 가난한 것이다...우리가 늘 銘心해야 하겠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