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에서 도닦기

도토리 키재기 (2)

참 나 2006. 12. 28. 15:13

 

도토리는 예나 지금이나 '도토리' 다!
대추는 대추고, 밤 또한 밤인 것입니다. 
참새는 예나 지금이나 참새요,
삽살개는 삽살개고, 누렁이 소는 여전히 누렁이소 올시다...

(한국)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한국)사람이요,
대개 잘 들 먹는 탓에 몸 집이 여섯 자 정도로 커졌어도...
헹여, 이제라도 굶주리게 된다면, 옛날의 토종으로 돌아가겠지요?

암튼...조선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조선사람,
유전자를 검사해 보면 '고놈이 고놈' 이란 것이 판명됩니다.

왜 굳이 이런 말을...?
우리는 하나요 하나임...이라는 말씀을 깊이 이해해 보고자 함입니다.
내가 너와 이만큼 다르고, 저 무리들하고 내가 또 이렇게 다른데, 왜 자꾸 짜증나게 '하나' 를 강조하는가? 뭣이 하나란 말인가?  그것이 바로, 도토리 키재기...라는 말씀입니다. 다 같은 도토리 임을 깨닫는 것!... 그것은 '다시 合一' 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그렇담 '분리의 과정' 은 어떻게 시작될까요.

나는 내 마음대로다!, 내 고집대로 한다! ...
이러한 '자아의식' 은 아마 예닐곱살 부터 형성되기 시작하겠지요. 가족들, 또래 집단으로 부터 '내 맘대로다(!)...' 하는 자아의식(고집부림, 떼 씀)의 형성... 그것은 다름아닌 분리과 고립의 경험입니다. 사고를 친 자아, 일을 저질러 버린 자아는 이제 갈듬을 겪습니다. 

그 불안감을 없애기 위하여 이러 저러한 꾀를 쓰게 됩니다. 응석과 아양, 내 것을 주면서 편을 만들려 하겠지요. 타협도 시도하려 합니다.  힘이 된다면 괴롭히고 위협도 해 보려 합니다. '거짓말하기' 를 비롯, 온갖 수단을 다 쓰려 하겠지요. 부모와 가정, 또래 집단으로 부터의 분리를 의식하게 된 '쬐끄마한 나'...는 이렇게 두려움과 불안에 대응하는 법을 배우고 익숙해져 갑니다.  어른이 되는 과정일까요...!?  

 

다시 친해지고 싶다...집단에 소속되어야 한다...그래야 즐겁게 떠들며 살 수 있다...더 이상 불안하고 어색한 몸짓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다름아닌 '합일' 의 과정이요, 하나되고 싶음의 몸짓이다...하나님, 구세주를 찾는 마음이다!... 이쯤되고 나면 여기서 기독교, 유교, 불교냐 이슬람교냐 수니파 시아파냐...하는 것은 빨간 옷과 파란 옷을 놓고 선택하는 것 만큼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한결같이, 무리에 '소속됨' 을 원한다는 것일 뿐... 

 

'또래집단, 공동체' 에 다시 소속됨으로서, '두려움과 불안감' 은 해소되며, 치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일종의 '구원' 이겠지요?   하나 됨, '하나님'과의 합일은 곧 '나를 버리는 행위' 입니다.

그 세련된 체계를 '기성종교' 가 마련해 놓고 있고요.  우리는 공동체 속에서 '하나됨' 을 찾습니다.  무리를 짓는 것, 그래야 웃고 떠들며 안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때, 이러저러한 '교리' 는 여럿을 묶어놓는 수단이 되겠지요.  이것이 바로,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종교....의 역할이요, 핵심인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