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아름다운 숲 단풍, 반야심경, 청담스님 번역 인용

참 나 2018. 10. 1. 22:53



관자재보살(=관세음보살)이 道를 닦아, 참마음 자리(='참 나')를 깨닫고,

삼라만상, 그 느낌과 따짐, 저지름, 버릇 등의 다섯 가지 마음의 지어냄(색.수.상.행.식) 에서 벗어났느니라.


1.

사리불이여, 있음(色=正)이 없음(空=反)과 다른 것이 아니고, 없음 또한 있음과 전혀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있음'의 바탕은 '없음'이란 관념이며, '없음'의 바탕은 '있음'이란 관념이니, 있음 과 없음은 

서로에게 빚을 지고 있느니라.  

 핵심은, 존재 그 자체를 놓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에 덧씌워진 '가치'(色)을 말한 것입니다.


 註: 이것은 연기법(緣起法)을 말한 것입니다. 

      상반되는 일체의 양극단은 마치 서로를 배척하는 것 처럼 보이는데, 그것은 착각이고  천만의 말씀이다,

      즉, 양극단은 더불어 존재하는 것이다. 이를 일컬어 慈悲心, 相生, 사랑(supreme love)이라 부른 것입니다.


         '더럽다'는 것은 깨끗하지 않음을 바탕으로/  '높다'는 낮지 않은 것으로/  '크다'는 작지 않은 것으로/ 

'앞'은  뒤가 아닌 뜻으로/  밝다 는 어둡지 않다는 뜻으로/ 좋은 것 은 나쁘지 않다란 방식으로, 

반대 쪽 개념에 비춰보아서(=조견,照見)

우리는 만물,만상의 '가치'(value, 色)를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대상(正)의 가치를 인식할 때, 그와 반대되는 가치관념(反)에 비워 보아서 평가한다, 

       그 '반대관념'이 없다면, 나는 대상의 가치를 인식할 수 없게 된다. (=그게 뭔지를 판단할 기준이 없음).  

       따라서, 반대나 부정적인 관념(價値)은 없어져야 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같이 있어야 하는 것' 이다,  

 

       '나쁜 놈(악당)'이 존재함으로서, 좋은 사람(보안관)의 '존재가치'가 돋보인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즉, 나쁜 놈은, 좋은 사람이 있는 통에 그 나쁨이 더욱 드러나 보인다, 이러한 이치를 상보성(陰,陽)이라 한다. 

'반대되는 것은 이 쪽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며 고상한 말을 하는데, 그것은 '연결된' 정도가 아니다! 

상반되는 두 가치는 분리상태로는 존재가치를 잃는다, 따라서,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지상낙원(天國, 하늘나라, heaven)에는 '나쁜 것'들이 전혀 없으니, 자신들이 누리는 '좋은 가치'가 

           얼마나 좋은 것 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상낙원'이란 것은 나쁜 것이 섞여 있는 곳, 즉

속세에서만 발견(존재)할 수 있습니다.  

       .

       진(眞),선(善),미(美)도 마찬가지다, 그 자체만 으로는 사람들이 그게 뭔지 알아볼 방도가 없다! 

들과 반대되는 짓,악함,추함...이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진,선,미 역시 그 가치를 향유하는 것이다, 

 라서, '부정적인 모습'을 대할때 '없어져라 또는 암짝에도 쓸모없다'는 식의 생각을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리석음 이다, 그러니 깨달으라! 거짓, 악함, 추함도 음지에서 '밥 값'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2.

         '참 나'는 스스로 밝으니, 지혜로 얻는 것이 아니다, 

   '참 나'는 전지전능하다, 아무 데에도 걸린 데가 없고 (마음이 구속된 바가 없음, 척이 없음) 두려운 것이 없으니, 

   열반에 이르며, 모든 부처도 이 '마음 자리(참 나)'를 깨달아, 가장 높고, 바르고, 밝은 지혜로써 생사를 초월하여

   자유자재한 경지를 성취했느니라.

   그러므로 생각(자아)의 주인, 마음 아닌 마음(='참 나', 거울/스크린)은, 가장 밝고 높은 주문이며 절대(絶對)인

   것이다, 능히 모든 고난을 물리치고, 있는 그대로를 보니 허망됨이 없느니라. 이에 '참 나'를 깨닫는 주문을 말하리라.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네이버지식백과]반야심경 (한 권으로 읽는 팔만대장경, 2007.6.10. 도서출판 들녘)

註:

'청담스님'의 해석과 함께, 다시 두 부분 (연기법 과 '참 나') 으로 나누고, 첨삭하여 보았습니다. 


1. 연기법 (緣起法)

2. '참 나' 


깨달음이란 것은 이 두 가지를 깨닫는다는 뜻이며, 팔만 사천의 법문도 이에 대한 각주(脚註)일 뿐이다,   

.

- 아, 그런 얘기였구나! 하고  '반야심경'을 이해했다면, 이미 깨달은 사람(覺者,尊者,觀世音菩薩)이다,

역(逆)으로, 사람들은 '관세음보살'이 아니므로 이런 글을 보더라도 어슴프레 짐작만 할 뿐이다, 

   '관자재보살이 道를 닦아서 깨달았다'라고 했듯이, 힘들게 얻어지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