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知識)이 많다, 머리가 비상하다, 유.불.선의 경전들을 다 꿰고 있다, 이런 모습은 그 사람이 깨달음을 얻는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속세의 사람들은 많은 지식을 가진 이를 떠 받듭니다. 당사자는 그걸로 먹고 살며 행세도 하겠지만 그 많은 지식은 깨달음에
방해가 될 뿐이다, 왜냐? 세상을 자기 방식대로 이미 규정해 버린다, 뭣은 뭣이다, 나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결국, 지식,경험은
과거의 것이다), 세상 누구 보다 내가 더 많이 안다고 하는 그런 것들은 다 편견,선입견,고정관념이고 자아를 강화할 뿐이다,
그런 것은 모두 다 묵은 관념일 뿐이다, 죽은 것들이다, 우리는 늘 새롭게 살아야 합니다.
과거의 관점과 인식을 갖고서는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없다, 어떤 틀에 넣어서 세상을 상대한다는 것은 깨달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깨달음은 지식을 습득하는 일이 아니다, 오직 의식(알아챔) 그것 하나만 챙기면서, '있는 그대로(海印)'를 보는 지혜이다,
따라서, 이렇다 저렇다 하는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 깨달음은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라 그 반대다, 기왕에 습득한 지식을 다 내려
놓는다, 자기 스스로 무장해제 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과의 모든 벽을 허무는 일이다, 툭툭 털어버리고 근원에서 다시 만나서,
맥박과 호흡을 맞춰서 같이 살자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왔던 그 잘난 방식들은 쓸모가 없다, 새 술은 새 부대(甁)에 담는 것이다,
깨달음은, 내가 스스로 나의 모든 것을 다 포기하겠다고 결심하는 일이다,
내 사고방식, 생활습관등을 근본에서 부터 뜯어 고치겠다는 각오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것은 말(馬)이 물을 먹는 것과 같다,
스스로 물을 먹는 것이다, 이 때, 스승의 가르침이 도움이 되는데, 이 절묘한 타이밍을 일컬어 '줄탁동기(啐啄同機)'라 한다,
이는 인간개조(改造)라고 하는 엄청난 공사다, 사람이 새로 태어나는 일이다, 이후로는 상당기간 스승(선각)한테
목을 매다시피 하면서 지도를 받고, 둘 사이에는 (묵은 자아가) 고집과 말썽을 피웁니다. 투정 부리면 이를 받아주기도
하고 꺾기도 하면서, 스승과 제자는 자주 부딪히고 싸웁니다.
맨 정신으론 도저히 받아 들이기 힘든 얘기다. 그래서, 극소수가 끝까지 밀어부쳐서 용케 결실을 얻고, 한 소식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새롭게 태어나려고 할 때, 내 안에서는 (묵은)자아가 완강하게 저항하고 거부합니다. 때문에, 아무리 좋은 말씀
이라도 바위에 물 주기, 쇠 귀에 경 읽기가 될 수 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깨달음'이란 것은 세상을 새롭게 대하려고, 나의 묵은 사고방식을 뜯어 고치는 일이다,
세상물정에 맞춰 잘 조율해 놓은 내 사고방식을 변화시키노라면, 꿈을 꾸더라도 선각한테 쫓기는 악몽을 꿉니다.
죽을 만큼 두렵고 힘든 일이다,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나? 이 서툰 짓을 계속해야 할까나? 그만 집어 치우고 옛날에 하던
대로 하면서 편하게 살면 좋을텐데...? 회의와 번민이 끝없이 밀려옵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의식이 나의 주인임을 인식하고 마치 구경하듯 상대할 수 있다면,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내 중심을 잡을 수 있습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 隨處作主 立處皆眞)
이는 실천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하는 식의 그 흔해빠진 인문교양 강좌가 아닙니다,
내 재산, 심지어 가족까지도 버릴 수 있을 만큼의, 죽느냐 사느냐 하는 처절한 각오가 따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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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성경을 위시하여 모든 깨달음(의 실천)의 말씀,경전들은 무시무시한 얘기로 가득합니다.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
으로 강(江)을 건넌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는 일 입니다. 과거의 나를 없애지 않고서는 새롭게 태어날 수 없으니!
이제까지의 나와 이별을 해야만 하는, 이 힘든 일을 감히 이 시대의 타락한 교회, 성당, 절 따위가 감당하리오?
그들이 과연 몇 명이나 건질 수 있으리오? 불안해진 가족들이 난리 굿을 치며 반대하겠지요.
도(道)를 닦는다는 것은, 삶(의식)을 근본에서 부터 뒤집고, 지금까지 와는 반대 버젼(version)으로 세상을 해석하며,
살아가겠다고 결심하는 일 입니다, 주변과의 마찰도 뻔히 예상된다, 성경 속의 예수도 그런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강증산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르는 자는 먼저 복마(伏魔, 묵은 自我)의 발동이 있으리니, 이를 잘 견디어야
해원(解寃相生)하리라"
성경 말씀에도, "나는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division)을 일으키러 왔노라"【누가 12:49~53】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노니, 지금 여기 서 있는 者들은 하늘의 왕국(깨달음)을 알기 전 까지는 죽음을 맛 보지
않으리다"【누가 9:27】이는, "깨달음을 얻는 모든 이는 반드시 죽음을 맛 보게야(taste death)되리라"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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