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너 자신을 알라!
(나는 누구인가?) '너 자신을 알라!'
쉽게 한 말 같지는 않고 뭔가 '깊은 뜻' 이 있는듯 한데 그게 뭘까 궁금합니다...?
이 말을 한 사람한테 직접 그 대답을 들어야 옳겠으나 부득이 답을 한 번 붙여 보겠습니다.
도마복음서 제3장
'4절 네가 네 자신을 알 때, 비로소 너는 알려질 수 있으리라. 그리하면 너는 네가 곧 '살아있는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5절 그러나 네가 너 자신을 알지 못한다면 너는 빈곤 속에 살게 되리라. 그리하면 네 존재는 빈곤 그 자체이니라'
'살아있는 아버지의 아들' 이란 '내 안에 거하는 하나님'을 얘기하겠지요. 아버지가 살아있다라는 표현이 아니고, 아버지란 하나님 아버지요, 그가 내 안에 거하니까 결국 '살아있는 내가 곧 하나님 아버지'란 뜻입니다. 5절에 내가 나를 모르면 빈곤하고... 빈곤 그 자체(!) 라 못박았습니다. 하나님 성령이 너희 몸 안에 있다! 4절 앞부분에 '알려질 수 있다' 란 말은, 내 몸처럼 남을 따뜻히 대한다면 그 공동체 내에서 당신의 존재는 알려질 것이라...는 뜻으로 봅니다.
5절에 '빈곤 속에 산다' 는 뜻은, 남을 차별하여 차갑게 대하면, 나는 내가 만든 '경계'속에 갇히게 된다... 아무리 큰 집에서 산다 해도 울타리(ego)를 치는 순간 그 울타리 안에 갇힌다... 따라서, 마음의 울타리를 걷어 치워라... 그러면 세상이 다 내 집이요, 세상사람이 다 내 친구이니라! 그것이 '풍요' 라...이겁니다. (부정적 사고로는...'내 울타리를 걷어내면 남 들이 내 것을 다 뺐아간다! 내가 왜 비싼 밥 먹고 남 좋은 일 하랴?...고 화를 내겠지요? 처, 자식들이 '아버지 미쳤다!' 며 들고 일어날 겁니다. 이렇게 저항이 심한 것이 현실입니다. 잘 안 되는 이유입니다. 개인적으로, 이제 종교의 가르침으로 사람을 개조하는 일도 끝났고...현재처럼 사람들이 이기적이요, 지들끼리 물어뜯고 하는 식의 경쟁으로 먹고사는 체제는 끝장이 왔다!...이런 사회는 마땅히 개벽이 되어야 합니다. 경쟁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회... 물질의 풍요가 덜 하더라도 영성이 그걸 다 아우릅니다. 인간들이 양심을 버린 댓가는 내년까지(?) 혹독히 치를 것이고, 2012년 인류는 그 끝을 보리라' 는 예언도 있습니다만... ㅠ/ㅋ. 암튼,
쉽게 풀이하면 이런 뜻입니다.
너희는 다 살아 펄떡이는 생명체(살아있는 아들!) 임을 알라...내 몸 아끼듯이 이웃의 몸도 아끼고 사랑하며 돕고 살라!
그리하면 물질적, 정신적으로 부족함이 없으리라... 그와 반대로, 너희들끼리 경쟁하고 울타리를 치고, 따로따로 분리되고 격리되어 산다면, 생활공간(아파트 평수)이 아무리 넓더라도 협소할 것인즉, 아무리 돈이 많아도 빈곤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욕심/욕구는 절대 '만족'이 없음. 나눌수록 커지는 이웃사랑과 움켜쥐기만 하는 재물욕심은 절대로 같이 할 수 없으며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 는 뜻입니다. 부자는 마음이 각박하여, 옆에서 누가 죽어도 모른체 해야 합니다. 부자 주위엔 상대적으로 온통 없는 사람 뿐일 터이니, 자신은 늘 주변에 기웃대는 거지들한테 뜯기며 산다고 느낍니다. '돈 없다' 며 없는소리만 합니다. '부자여, 그대는 참으로 마음이 빈곤하니, 아무리 많이 쌓아 놓았어도 빈곤하겠구나!'
남의 집이라도 내 집처럼 허물없이 드나들 수 있고, 남이 둔 이쁘고 잘난 자식도 마치 내 자식인양 흐뭇하고, 남이 돈을 벌면 내가 번 듯이 기분이 좋다!...이런 말씀인데, 어떤 사람은 불쑥 '거 미친사람 아니냐...' 고 한마디 하겠네요? ㅋ/ㅠ. 뭔가 친절하게,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면, 버럭 성질을 내며 반발합니다. "세상물정 모르는 헛소리 하고 앉았네..." 그렇기에 '선문답' 하듯 어렵게 툭 내던지는 겁니다. 알아 듣는 자는 알아 들을 것이요, 못 알아듣는 자는...거 뭐 어쩔 수 없다!
남 한테... 베풀고 사랑하고 친절하는 행위들 (그와 반대되는 행위 또한)은...그 행위의 수혜자는 다름아닌 '나' 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힘들여 사랑하고 친절을 베푼다...? 그런 일들은 한계가 뻔한 얘기입니다. 애써 베풀고 사랑해 줬는데도 그에 상응한 반응이 없다면 이내 회의감이 들겠지요? 상대방에 대해서도 괜한 짜증과 신경질이 납니다. 주고 받고, 장사거래와 같은 이런 행위라면
애초부터 안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렇다면 뭘까요? 사랑과 친절을 베풀면 그 때 독특한 분위기가 생깁니다. 그 기운을 내가 제일 많이 받게 되겠지요? 좋은 일 했더니 얼굴도 편안해 보이고 내 기분이 좋더라...! 그겁니다. (나쁜 일의 분위기는 내가 다 뒤집어 쓸 것이고!)
그래서 남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이고, 복수와 같은 행위는 절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게 다 나를 위해서인 것입니다.
과격하고 흥분 잘하는, 소위 기가 쎈 사람들한테는... '성인의 말씀' 이란 것이 자신의 삶과는 모두 다 정반대요, 어긋나기에 모욕적으로 느낍니다. 과거의 '성인'들은, 제자에게 배신과 죽임을 당하고, 때론 느닷없이 두들겨 맞기도 하며, 처 자식과도 알콩달콩 살지 못하는 등, 온갖 속세의 곤욕을 치루고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명심보감...'君子自難而易彼, 小人自易而難彼' (군자는 자신이 힘들지언정 남을 편하게하고, 소인은 자신이 편하려고 남을 힘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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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 고 한 말은 이와는 다른 뜻이겠지요? 나에 대한 '지식' 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나를 잘 알것 같아도 실은 젬병입니다. 오래 전, 직장 후배와 무슨 말 끝에 "...말을 너무 딱딱 끊어서 하시네요!..." 라며 결점을 지적받았습니다. 당시 속으론 (아니 뭘...난 전혀 아닌데...내가 얼마나 인내심도 많고, 남의 말 잘 듣느라고 애쓰고 있는데...잘못 본 것이겠지!)
그래서 '아니라' 고 했는데 나중에 다른 사람한테 그 후배의 지적이 맞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안 그러려고 주의합니다만)
또, 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음, 음..." 하면서 채근하는 버릇이 있는 (친한)친구가 있어서, 얼마 전 대화 도중에 이를 지적해 주면서...
"그렇게 하면, 말을 빨리 끝내라고 신호를 보내는 게 된다...좋지않은 대화법이다!" 고 일러줬더니...웬걸! 그거 아니라! 는 겁니다.
이렇게 명백하게 방금 드러내 보인 허물조차도 본인은 "절대!" 받아 들여지 못합니다. 이런 것들이 다, 자기 허물은 자기가 모른다! 는
결정적인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자기 허물을 알았다면 그 또한 고쳤으리라!...그런 생각도 합니다만,
修道행위란 '내가 나를 다스리자는 것' 입니다. 혹자는 이것이 '道' 라 했고, '心法' 에 관한 얘기는 동서고금의 성인들이 다 말했습니다.
나(내 마음)를 잘 알아서, 삿된 감정이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다스려야 한다! 우리 마음은...마치 철장 속 원숭이들처럼 날뜁니다.
내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날뛰는 마음한테 당하고 맙니다. 연이나, 흥분해서 난리 굿을 치다가도 나중에 조용해 지면 후회합니다.
내 마음을 다스리려면 '나를 알아야 가능' 하겠지요? 너 자신을 알라! 그리하면...너의 마음도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정상적인 몸, 그리고 마음' 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것은 곧 '신'의 표상이다!
이미 온전한 ...'神의 몸, 신의 마음' 에... 너희가 제아무리 기막힌 치장을 덧붙여도 그것은 '개칠'에 불과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