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는 낙서도 반듯이 쓰는데
요즈음 취미삼아 한자로 글씨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신문지 위에 맘에 맞는 볼펜으로 이것 저것 한자를 쓰고, 옛 명필들의 서체도 흉내내 봅니다. 해서, 행서, 초서를 연습하고 모르는 한자는 따로 적어 익히기도 합니다. 신간'속뜻사전' 도 한 권 샀습니다. 저녘을 먹은 후 책상 앞에 앉아서 끄적이고 있노라면 한 시간은 쉽게 지나갑니다. 암튼...
친구중에 대나무를 잘 그려서 전시회 출품도 하는 이가 있는데, 물론 글씨도 잘 씁니다.
그 글씨체가 잡혀있는 폼을 보노라면 경지에 올라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글씨쓰는 재주는 다분히 선천적인 요소가 지배한다는 생각에...이 친구, 전생에 아니면 조상중에 누가 글씨 꽤나 썼던 게로구나...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한 번은 자기 집 안내약도에 쓴 글씨를 봤는데 역시 허투루 쓰지 않고 곱상하니 반듯하게 잘 써 놓았습니다.
고수.
이것이 평범한 재능은 아닌 것입니다. 글씨의 고수는 낙서를 하더라도, 급하게 메모를 하더라도, 반듯하게 씁니다. 마음이 급해서, 되는 대로 휘갈겨쓰듯... 하지 않습니다. 졸필, 그것은 습관이라 해야겠지요. '졸필' 을 남에게 내 보인다는 것은 '고수' 로선 수치요, 자존심이 허락치 않습니다.
'제비뽑기' 를 하더라도 '에이, 아무거나 나와라...' 하는 마음으로 뽑으면, 지리멸렬한 결과를 보게 됩니다. 아무리 '복불복' 이라 하더라도 최선의 결과를 의념하며 끌어당겨야 합니다. 이왕이면 남보다 먼저 뽑아야 합니다. 막판으로 갈 수록 찌꺼기만 남지 않던가요?
그릇에 담긴 딸기를 먹을 때 보면 마지막 남은 알맹이는 늘 반 쯤 문드러진 것이더군요. 막판 '떨이물건'이 쌩쌩할 순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ㅋ) 각설하고,
고수는 비단 '글씨' 에서 뿐 만이 아닙니다.
수 백가지...우리 일상의 모든 면에서 다 마찬가지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허튼 짓' 을 안하는 것!
사람을 상대하고 대화를 하는 것, 입고 먹고 싸는 일상의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다 해당됩니다.
그때 그때 감정이 동하는 대로 불쑥불쑥 저지르곤 하는 것이 일상의 모습 아닙니까.
고수는 함부로 감정을 일으키지 않는다!
(모든 것이 다 '작품' 인지라...)
글씨 한자를 쓰더라도 반듯이,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정확하고 반듯하게...인 것입니다.